2025.02
종이라는 세계
– 기억과 시간, 그리고 그 위에 새겨진 흔적들
내게 있어 종이는 단순히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매체가 아니다. 종이는 시간의 흔적이자, 기억의 저장소이며, 감각의 층이다. 나는 종이를 통해 시간과 기억을 구체화하고, 그 속에 얽힌 감각을 탐구한다. 내가 만든 종이는 평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과 그 층을 물리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입체적 존재에 가깝다.
2018년, 나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종이를 만드는 법을 익혔다. 그래서 내가 종이를 만드는 방식은 일본의 전통적인 기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일본의 전통지인 화지(和紙)는 대부분 닥나무 섬유로 만들어지며, 이를 위해 겨울에 수확한 닥나무를 삶아 그 껍질을 벗겨내어 섬유를 두들겨 넓고 고르게 펼친 후, 물에 담가 부드럽게 한다. 그런 뒤 끓여 불순물을 제거하고, 섬유를 손이나 기계로 풀어 균일하게 만든다. 종이를 뜨는 방식은 크게 ‘흘림뜨기(流し漉き)’와 ‘모음뜨기(溜め漉き)’가 있다. 흘림뜨기는 여러 번 섬유를 떠내어 사각 틀에 균일하게 펼쳐지게 만드는 방법으로, 얇고 큰 종이를 만드는 데 적합하다. 반면, 모음뜨기는 틀을 수조에 깊숙이 넣고 원료를 틀 안에 가두어 한 번에 떠내는 방식으로, 주로 작은 크기나 두꺼운 종이를 만들 때 사용된다. 이렇게 원하는 종이의 두께와 크기에 맞춰 뜨는 방법을 선택하는데 나는 더 나아가 종이가 귀했던 시절, 헌책이나 폐지 등 이미 사용하여 쓰임을 다한 종이를 물에 풀어 다시 새로운 종이로 만드는 방식인 ‘다시뜨기(漉き返し)’ 기법을 접목하여 종이를 만든다. 낡은 종이를 다시 뜨는 것은 기억의 저장소로써 작용하는 종이의 물성을 깊이 느끼고 감각할 수 있어, 그 과정을 통해 오래된 종이가 존재했던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시간성과 내가 살고 있는 시간이 연결되는데 이는 내게 있어 아주 중요한 행위다. 헌책에서 추출한 원료를 가공하고 다시 물에 풀어 떠낼 때 단순히 책에 적힌 글자나 시각적 정보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그 책의 존재와 그 속에 담긴 시대의 흐름을 현재와 연결하는 중요한 작업임을 내게 상기시킨다. 따라서 다시뜨기는 재활용의 차원을 넘어서, 시간의 레이어와 그 무게를 종이 위에 담중기 위한 중요한 행위이자 태도이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 한 번 사용된 종이는 이미 그 자체로 기억을 담고 있다. 기억을 종이로 다시 만들었을 때, 그 안에 깃든 과거의 시간성은 지금의 나와 만나 하나의 견고한 물질이 된다. 그리고 물질은 수많은 시간이 겹치고 교차하며 얽히는 복잡한 법칙을 가진 하나의 세계로 발전한다. 시간이 흐르면 물질은 변하지만, 그 물질이 남긴 흔적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도시를 걸으면서,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어떤 것들이 남긴 기억을 상상한다. 오래된 간판이나 자라나는 들꽃을 보면서 나는 그 물질 너머에 숨겨진 영원한 무언가를 느끼고 찾아내려 애쓰는 것이다. 도시의 흙과 나무, 벚꽃을 보며 대지의 기운과 수많은 존재들의 생동감을 톺아본다. 우리가 시각에만 현혹되어 망각해버린, 그러나 절대 소멸될 리 없는 것들을 떠올리며, 그 잔상을 내 종이에 담고 싶다. 그렇게 살아 있는(던) 모든 것들을 종이라는 공간 안에 새겨본다. 나는 그 공간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관통하는 기억의 흐름을 만들어 간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과거는 지금의 내 눈앞에만 소환되어 철저히 나만의 방식으로 흐를 뿐이다. 그러므로 내가 바라보고 느끼는 것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느끼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내가 만든 기억의 기둥이 전시되었을 때,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각기 다른 기억으로 치환되고 동기화되는 장치로 작용한다. 그래서 내 손에서 만들어진 종이는 내가 쌓아온 시간의 현현(現現)이자, 동시에 관객이 경험하는 지금 그 자체가 된다. 작품이 '완성'되었다고 해도, 그 순간의 시간은 계속 변화하며 수많은 흔적들을 새겨 나간다.
2025.02
紙という世界
– 記憶と時間、そしてその上に刻まれた痕跡
私にとって、紙は単なる文字を書くための道具や絵を描くための媒体ではない。紙は時間の痕跡であり、記憶の保存庫であり、感覚の層でもある。私は紙を通じて時間と記憶を具象化し、その中に絡み合った感覚を探求する。私が作る紙は、平面に存在するものではなく、時間の流れとその層を物理的に感じることができる立体的な存在に近いものである。
2018年、私は初めて日本で紙を作る方法を習った。そのため、私の紙作りの方法は日本の伝統的な技法を基にしている。日本の伝統的な和紙は、主に楮(こうぞ)という樹の繊維で作られている。冬に収穫した楮を煮て皮を剥ぎ、繊維を叩いて広げ、均等に広げてから水に浸して柔らかくする。その後、煮て不純物を取り除き、繊維を手や機械でほぐして均一にする。
紙を漉く方法には「流し漉き」と「溜め漉き」の二つがある。流し漉きは何度も繊維を漉いて四角い枠に均等に広げていく方法で、薄くて大きな紙を作るのに適している一方、溜め漉きは枠を水槽に深く入れ、原料を枠の中に閉じ込めて一度に漉き取る方法で、主に小さなサイズや厚い紙を作る時に使われる。このように、欲しい紙の厚さやサイズに合わせて漉き方を選ぶのだが、私はさらに、紙が貴重だった時代に使われた古い本や廃棄された紙を水に戻して再び新しい紙として作る「漉き返し」という技法を取り入れて紙を作っている。古い紙を再び漉くことは、記憶の保存庫としての紙の物性を深く感じ取ることができ、その過程を通じて、古い紙が存在していた時代とその時代を生きた人々の時間性が、今生きている私の時間とつながることを感じる重要な行為である。古本から抽出した原料を加工し、水に溶かして漉く際、単に本に書かれた文字や視覚的な情報に集中するのではなく、その本の存在とそこに込められた時代の流れを現在と結びつける重要な作業であることを私に再認識させてくれる。したがって、漉き返しはリサイクルの次元を超えて、時間のレイヤーとその重さを紙の上に込めるための重要な行為であり態度でもある。
前述したように、一度使われた紙はすでにそれ自体で記憶を宿していると考える。紙で記憶を再び作り出したとき、その中に宿る過去の時間性は今の私と出会い、ひとつの確固たる物質となる。そして物質は、数多くの時間が重なり交差し絡み合う複雑な法則を持つ一つの世界へと発展していく。時間が流れると物質は変化するが、その物質が残した痕跡は決して消えることはない。
私は都市を歩きながら、時間が経っても消えない何かが残した記憶を想像する。古びた看板や育ちつつある野花を見ながら、その物質の向こうに隠された永遠の何かを感じ取ろうとする。都市の土や木、桜を見ながら、大地の力と数多くの存在たちの生き生きとした感覚を探るのである。私たちが視覚に惑わされて忘れてしまったが、決して消えることのないものを思い出し、その残像を私の紙に刻み込みたい。こうして生きている(いた)すべてのものを紙という空間の中に刻み込む。私はその空間で、過去と現在、そして未来を貫く記憶の流れを作り上げていく。
しかし、私が記憶する過去は今の私の目の前にのみ召喚され、徹底的に私自身の方法で流れていくのみである。したがって、私が見て感じるものを他の人が同じように感じることは不可能だろう。しかし、私が作り上げた記憶の柱が展示されたとき、観客の動きによってそれぞれ異なる記憶に置き換えられ、同期される装置として機能する。だから、私の手で作られた紙は、私が積み重ねた時間の現れであり、同時に観客が体験する今そのものとなる。作品が「完成」したと言っても、その瞬間の時間は常に変化し、数多くの痕跡を刻み続け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