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적으로, 너른: 너른 종이 길이 가진/가지게 된 모양새
콘노 유키
종이를 건드리는 일만큼 잘 건드리지 않는 문제도 없다. 특히 펜으로 쓰기보다 키보드로 타자하는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종이에 연필 끝이 닿고 휘갈기는 소리, 한장 한장 페이지를 넘기는 감각, 책을 덮을 때 나는 소리— 종이는 글과 이미지를 전달하는 매개 이상이며 많은 감각 요소를 포함한다. 청각은 시선 너머를 우리에게 끌어온다. 촉각은 시각 이상으로 무게, 질감, 부피감을 전달한다. 한낱 종이를 감싼 공감각은 경험의 두터움을 실어 나른다.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는 종이를 건드릴 수 있는 한에서 가능하다. 종이를 쓰는 미술가의 작업으로 관람자가 이런 경험을 하기는 어렵다. 이에 더해 작품의 바탕재는 물감보다 주목받지 않고, 작품에 손을 대는 건 예의가 아닌 일로 간주된다. 이러한 이유로 종이를 건드리는 문제는 애초에 건드려지지 않게 된다. 시각 중심의 비-접촉 감상은 보는 행위 안에서 종이를 망각한다.
다시 말해서 종이만큼 그늘진 곳도 없다. 그 위에 먹이나 안료가 올라갔을 때, 사람들은 ‘무엇을’ 혹은 ‘무엇으로’ 그렸는지에 집중하고 ‘무엇에’ 그렸느냐고 잘 묻지 않는다. 시각적 비-접촉 감상 경험 안에서 어떻게 이 희고 투명한—투명하게 여기는 존재에 시선을 (되)돌릴 수 있을까? 중간지점 둘에서 열린 《소요지 逍遙紙 : 너른 종이 길》은 종이 곁에서 작업하는 두 작가와 전통 순지 장인의 시선을 담은 기획전으로, 종이가 가진 면모를 시각, 청각, 촉각으로 그린다. 전지홍은 순지 위에 동양화 기법으로 작업하고, 이혜림은 직접 종이를 제작함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전시장에 걸린 영상 <너른 종이 길>(2024)은 전지홍과 이혜림이 각각 한국과 일본에서 작업하는 모습을 담았다. 전지홍이 순지를 화판에 붙일 때 나는 소리, 이혜림이 종이를 만들며 신체를 움직일 때 나는 소리는 결과물인 시각 작업만 가지고는 들을 수 없다. 그 외에 여러 사람과 어울려 종이를 만드는 워크숍(「동네방네: 우리 동네 종이에 담아보기」), 순지 장인을 만나 종이가 손으로 만들어지는 과정과 장인과의 대화를 담은 영상 상영회(「하나부터 아흔아홉까지: 전통 순지 장인의 순지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종이의 배경과 든 품을 알게 된다.
전시를 볼 때, 전시 제목과 전시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낄 수도 있다. 종이를 만지거나 순지 생산 과정을 볼 수 있는 워크숍은 전시 기간 중 특정 날짜에만 진행되었고, 전지홍과 이혜림의 작업은 여러 종이를 패치워크처럼 조합한 것이기에 그렇다. <순수한 종이>(2019-2024)에서 전지홍은 본인이 수집해 온 여러 종류의 순지를 벽에 붙였다. 이혜림의 <Air-Scenery #1>(2023)가 복잡한 공사 현장의 모습을 조각난 종이를 통해 보여주는 작업이란사실을 알면 ‘너른’이라는 수식어에 의문이 들기도 한다. 파편의 구성으로 보이는 작업에서 ‘너른’ 길은 어디에 있을까?
전시장에, 전시를 통해서 있다. 너른 종이는 종이와 사람이 어울려 함께 균형을 찾는 여정이다. 종이를 대하는 장인의 애정, 투과도에 따른 시각적 깊이감, 재료와 기법에 따라 다른 매끈하거나 뽀송뽀송한 종이 표면을 통해 우리는 종이가 각각 다른 면모를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전시의 핵심은 ‘너른 종이’가 하나의 개념어가 아닌 함께 만들어가는 길임을 보여주는 데에 있다. 전지홍과 이혜림의 작업에서 종이는 단일한 종류로 묶이지 않는다. 대신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여러 과정과 선택에 우리의 시선을 보내도록 한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넓은 의미의 질감이다. 여기서 질감이란 시각으로 전달되는 종이의 두께나 투과성뿐 아니라 종이를 이루는 다양한 감각을 아우르는 말이다. 작품으로 전달받는 시각적 질감, 영상을 통한 청각적 질감, 그리고 종이를 만드는 워크숍을 통한 촉각적 질감은 지금껏 우리가 건드리지 않은 종이에 시선을 비유적으로도, 실제로도 (되)돌리게 한다.
이번 전시는 순지의 소멸을 마주한 시선에서 출발한다. 업체마다 다른 질감과 특성을 가진 순지이지만, 전통 한지는 원료 부족, 장인 감소, 제작 과정에 필수불가결한 신체 피로 등의 문제로 언제 생산이 중단될지 모른다. 전지홍은 본인이 쓰는 종이가 앞으로 생산되기 어렵다는 직접적인 계기로 순지 장인 밑에서 손수 종이를 만들고, 일본에서 와시(화지和紙) 제작 방법을 익혀 이를 만드는 이혜림을 찾아가 이야기를 들었다. 이 여정을 담은 영상은 순지를 기억하기 위한 기록물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지나치는 이 희고 투명한 종이의 불투명함을 인식하는 수단이 된다. 곧 이 전시는 사라질지 모르는 종이를 우리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생각할 시점을 제공한다. 이혜림의 <Air-Scenery> 시리즈는 작가가 사는 일본 하시모토(橋本)에서 본 가림막 너머 공사장을 담은 작업이다. 공사 현장이란 곧 미래와 과거 사이에 선 중간지점이다. 소멸과 생산 사이에서 순지는, 넓게는 전통 한지는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우리는 전지홍, 이혜림의 작업에서 종이가 가는 길에 다양한 만남이 있음을 확인했다. 불과 종이 한 장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고, 어떤 모양새를 (그야말로) 갖추는지, 그 과정에 귀 기울이며 다가가는 경험 총체가 《소요지 逍遙紙 : 너른 종이 길》이다. 종이는 혼자가 아닌, 그 곁에 있는 사람과 함께 걷는다. 그렇게 이 여정은 더 너른 길이 된다.
전시 제목에 들어간 ‘소요(하다)’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1. 자유롭게 이리저리 슬슬 거닐며 돌아다님. 2. 걷는 것을 넘어서 마음의 자유와 여유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 등에 대한 깊이감— 깊이와 자유를 가진 종이, 순지는 ‘결과적으로’ 너른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 데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그것은 손으로 쥔다고 ‘장악(掌握)’할 수도, 눈으로 본다고 알아‘볼’ 수 있는 이야기도 아니다. 보이는 것을 넘어 생산과 창작의 고민 과정을 알려면, 종이를 시각적, 청각적, 촉각적 질감으로 살피고 그 깊이에 다가서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순지의 소멸과 생산 사이에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알게 된 것은, 건드릴 수 없고, 그렇기에 건드리지 않은 종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