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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지 逍遙紙 : 너른 종이 길

• 참여 작가 : 이혜림, 전지홍
• 전시 기간 : 2024. 3. 23. (토) – 2024. 4. 28. (일)
• 관람 시간 : 매주 금, 토, 일 오후 1시 – 7시 (월-목 휴관)
• 전시 장소 : 중간지점 둘(서울시 종로구 필운대로 5길 5 지하)
• 기획 및 진행 : 전지홍
• 서문 : 윤지희
• 영상 : 남경진
• 그래픽 디자인 : 김재하
• 번역 : 김혜인
• 도움 : 한지산업지원센터, 묵호당 표구사
• 주최・주관 : 중간지점, 전지홍
• 후원 :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2024년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 선정 프로젝트

⟪Soyoji 逍遙紙 : The steady path of paper⟫
• Artist : Hyelim Lee, Jihong Jeon
• Duration : 2024. 3. 23. – 2024. 4. 28.
• Hours : 1pm - 7pm (Closed on Monday - Thursday)
• Location : Jungganjijeom II (B1, 5, Pirundae-ro 5-gil, Jongno-gu, Seoul, Republic of Korea)
• Curated by : Jihong Jeon
• Text : Jihee Yun
• Video : Kyeongjin Nam
• Graphic Design : Jaeha Kim
• English translator : Haein Kim
• Support : Hanji Industry Support Center, Mukhodang
• Organized by : Jungganjijeom, Jihong Jeon
• Funded by :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Seoul

손자국 온기가 스며든 종이

[전시 서문] 윤지희 (독립기획자)

  때로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손에 펜을 쥔 채 종이 귀퉁이를 잡고 조심스럽게 한 글자씩 적는다. 실시간 전송 프로토콜이 일상이 된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편지를 전해주는 것은 여간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자리를 잡고 문장 하나하나 머릿속으로 곱씹은 뒤 종이에 온 마음과 안부를 담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모두가 알고 있다, 우리는 엄지와 검지로 잡고 느끼는 표면의 감각에서 온전한 마음을 전달받는다. 

   흔히 한지는 닥나무 껍질을 벗긴 연하고 질긴 섬유질을 원료로 하여 직접 손으로 뜬 종이로 설명된다. 이에 반해 '순지'는 한지의 또다른 이름으로 정확한 사전적 정의가 없지만,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그 정의가 다양하다. “닥나무 껍질로만 만든 종이”, “얇은 종이”, “좋은 사람들과 좋은 재료로 만든 종이” 또는 “순수한 종이” 등 순지의 정체성은 다른 시차 속에서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명확한 사전적 정의로 설명할 수 없는 순지는 인쇄용지나 크로키북 도화지와는 분명히 다른 색감과 온도를 갖고 있다. 인쇄 용지의 흰색은 반짝한광택과 매끈하고 날카로운 질감을 가진 한편, 한지의 표면은 광선을 안아주고 스며들게 빛낸다. 한지의 온도는 손가락의 체온과 비슷하다고 느껴질 만큼 포근하고, 섬유질이 섬세하게 얼기설기 얽혀 있는 표면도 마치 지문의 결과 유사하다. 

   ⟪소요지 逍遙紙 : 너른 종이 길⟫은 ‘순지’라는 종이 표면 위에서 마주한 손길과 시간을 너르게[1] 펼치며 시대와 문화의 풍경을 담고자 한다. 전지홍은 종이를 감각하는 여러 개별의 시차와 온도에 집중하며, 이를 워크숍, 전시, 토크의 형식으로 공유한다. 이에 전시는중간지점 둘의 공간을 구성하는 이혜림과 전지홍의 작업으로 종이를 만들고 종이를 경험하는 두 개별의 감각을 살펴볼 수 있다.  동시에 이들은 신체의 감각을 한껏 활용하며, 온전한 종이의 초상과 태도에 시선을 둔다.

   이혜림은 도쿄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일상 속 마주한 풍경과 시간을 종이로 떠내고 쌓는다. 그는 스스로 종이를 만드는 사람이라고칭하는데, 이는 시간을 형상화하는 작가의 태도와 유사하게 보인다. 하얀 종유석의 모습으로 천장을 타고 내려오는 <Sequence #white 002>는 물리적으로 포개진 종이들이 덩어리로 뿌리내린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작가는 종이의 원료가 되는 닥나무와 목재펄프를 직접가공하고 떠낸 뒤 일정 크기의 종이 파편으로 만들고, 수 천장의 종이를 쌓아내어 오랜 수행성의 시간을 지층의 모습으로 환산한다. 또한 그는 종이 표면 아래 겹겹이 풍경을 새기기도 한다. 이방인으로 살아온 시간 속 작가가 경험한 익숙한 풍경들과 장소들은 하시모토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공사 현장에서 기록되어 왔다. <Air-Scenery>시리즈의 재구성된 풍경들은 재개발과 재건축으로 금세 잊히고사라진 도시 모습을 공사장 막(幕)이 덮인 형체로 구현한다. 장소를 거닐며 생긴 일종의 안식과 동질감은 과거와 현재의 풍경을 결합하여 개인을 중심으로 생성된 시차들로 연결한다. 건물을 뒤덮은 일본의 공사장 천막은 얇게 짜여 반투명하게 내부가 비친다. 햇빛을받는 각도에 따라 내부의 모습도 달라지듯, 종이의 촘촘히 짜여진 섬유질은 사건과 장소의 공기를 떠낸 듯 비쳐내고 있다. 

   나아가 전시장 한쪽에는 여럿의 이야기가 담긴 순지 조각들로 채워진 벽과 순수한 종이를 찾아 유랑을 떠난 전지홍과 풍경의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다. 전지홍은 개인의 서사가 깃든 장소를 거닐며 신체가 감각한 풍경을 너른 순지 위 세필로 새기는 작업을 한다. <너른 종이 길>은 옛 고지도(땅그림)의 방법론에서 깃들어, 순지(순수한 종이)를 찾아가는 여정이 담긴 지도를 영상으로 그려낸다. 종이를 만드는 사람부터그 종이를 사용하는 사람 그리고 온전히 종이를 향해 걷고 유랑하는 풍경을 관측한다. 사람들의 이야기는 순수한 마음이 담긴 종이로 엮어지고 작가는 이를 소요하듯 거닐며, 종이의 문화 자체를 시대와 개인의 감각으로 경험하고 감각하는 여정으로 사유한다.

   종이를 만드는 이의 순간과 종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시점이 다르듯, 종이의 표면은 각기 다른 시차를 담고 있다. 이 시차는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 위치한 관측자가 만났을 때 발생하며, 종이의 표면을 감각하는 각기 다른 경험들로 설명될 수 있다. 온전하고 순수한 마음을 담는 편지의 결과 순지(: 손자국 온기가 스며든 종이)를 다루는 이들의 온기는 알맞게 따뜻하다. 순지를 감각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시차는 종이 위에서 깊이 스며든다. 

 

[1] 마음을 쓰고 생각하는 것이 너그럽고 크다.

사진 : 고정균 / 중간지점 제공
Photo : Jeongkyun Goh / Courtesy of Jungganjijeom

사진 : 고정균 / 중간지점 제공
Photo : Jeongkyun Goh / Courtesy of Jungganjije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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